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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쉬비어(Kölsch bier) 이야기
독일에 온지도 이제 6개월이 지나가지만 독일의 맥주는 뭔가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내게 있어 맥주란 맛이나 향보다도, 탄산감이나 온도감이 더 중요한 음료다. 잔이나 병을 얼기 직전까지 냉동실에 쟁여놓았다가 샤워한 후나 달리고 난 후에, 머리가 얼얼해질 때까지 들이키는 쩡하니 차가운 맥주. 그게 정석이다. 근데 이 독일의 크나이페나 바에서 내주는 독일식 생맥주는 어딘가 탄산감도 빈약하고 그 차가움의 정도도 한참 뜨뜻미지근하다. 거기에 더해 퐁퐁물에 한번 담궜다가 맹물로 스윽 씻어내는 특유의 설거지법도 가만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찝찝하다. 그런 면에서 맥주에 관한 한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가서 마시는 것보단 직접 마트같은 곳에서 병맥주(Heidelberger 1603 Premium Pilsner)를 사서는 내 방에서 내 식대로 마시곤 했다. 그래도 꼭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가거나 시험을 치러갈 일이 생기면, 꼭 그 지역의 맥주를 마셔보곤 하는데, 이번에 쾰른에 간 김에 쾰른의 양조장을 돌며 쾰쉬비어를 전부 먹어보기로 했다. 저번 뒤셀도엎에서 알트비어를 너무 맛있게 마셨던터라 또 묘하게 라이벌 관계라는 쾰른 지역의 맥주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쾰쉬 비어의 정의
상면발효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
밝은 황금빛을 띌 것
필터에 걸러졌으며 맑아야 할 것
가볍고, 잘 발효되었으며, 바디감이나 몰티함이 덜할 것
홉의 특성이 강조되었을 것
오로지 쾰른에서만 제조된 것
1. Gaffel
조성진 공연 네시간 전 라인파크에서 조깅을 마친 후 가볍게 식사도 할 겸 찾았다. 슈땅에(stange)라고 하는 0.2l짜리의 작은 잔에 나왔는데 이게 꽤 귀여웠다. 도쿄 소바집에서 에비수 병맥주에 내어줬던 정말이지 얇고 아담했던 잔이 떠올랐다. 좋은 잔은 맥주라는 본연의 내용물을 한층 더 기분좋게 전달해주는 중요한 형식임을 실감했다. 세련된 편지봉투에 담긴 엽서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이 쾰른식의 stange를 처음 봤을땐 뮌헨이나 이 남부 독일식의 무식하게 무거운 잔들 보다 확실히 더 호감이 갔다.(심지어 도자기로 된 특유의 옛날 잔들… 전통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건 정말 맥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갓 따른 신선한 맥주를 신선할 때 한두모금 정도로 짧게 끝내고 차라리 여러번 시켜서 그런 신선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즐긴다는 원칙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뭐랄까 생각보다 맥주가 달아서 놀랐다. 어쩐지 미국맥주(버드와이저)의 맛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특유의 향이랄 것도 없다. 탄산도 그렇게 강하지 않다. 밍밍하고… 특색이랄게 없다. 무미의 미. 이럴꺼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는게 무슨 의미인지…?싶었다. 내용은 부실한데 뭔가 스타일만 두드러진 개념미술 같았다. 맛은 차라리 알트비어가 더 좋았던 것 같다.(뒤셀도어퍼들은 농담으로 말이 알트비어를 마시고 싼 오줌이 쾰쉬비어라고 놀린다고 한다.) 아무튼 이 알듯말듯한 밍밍함이라 해야할지 슴슴함이라해야할지 모르겠는 맛에 잠깐 벙쪘다. 맥주의 온도도 약간 아쉬웠다. 일본식의 무자비하게 차가운 쪽이 나한테는 더 좋다. 본연의 음료로서 맥주보단 마리아주로써의 맥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전반적으로 그곳 조명은 어둡고 또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너무나도 큰 비어홀… Köbes라고 불리우는 쾰쉬 맥주 양조장의 담당 서버들이 슈탕에를 여러 잔 담을 수 있는 보드게임 도구같은 크란츠(kranz)을 들고다니면서 다 마신 잔들을 치우고 바로 바로 맥주를 테이블 위에 턱턱 얹어준다. 이곳 Gaffel에서는 네이비색 베스트를 입은 신경질적인 프랑스 배우를 닮은 쾨베스가 내 테이블을 담당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쾰시비어의 신선함이라는 건 이들의 노동력을 원동력으로 운영되는 것일테다. 이들의 무뚝뚝함과 불친절함, 나아가 팁과 식사의 지불비용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지불하는 비용은 어디까지 커버되는 것일까. 교환작용으로서의 지불비용. 무엇이 이들을 기고만장하고 무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고된 노동? 하긴 더 친절하다고해서 더 감정적으로 대접한다고 해서 더 보상을 많이 받는게 아니라면, 친절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 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고객을 대접하는 이들을 프로라고 하는 거겠지만…
2. Früh
테라스에 앉아서 마셨다. 역시나 웨이터들(Köbes)이 몹시나 기고만장하고 건방지다. 1명이라고 말해도 눈도 안 마주치고 아는 척도 안 하고 안내도 해주지 않고 쌩 지나가버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가펠에서도 그렇고 오히려 가장 유명한 브랜드들의 직원들이 이런 식이라는 걸 느낀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콧대 높게 만드는걸까. 가장 유명한 브랜드라는 점…? 맥주 자체도 그렇게 특별할게 없는데, 그 비어홀 옆엔 또 뻔뻔하게 으리으리한 쇼핑샵같은 걸 내놨다. 기념품샵이 맥주를 마시는 비어홀만큼이나 크고 현대적이라면 이건 어딘가 잘못된게 아닌가? 잘못된건 없겠지만 마음이 가진 않는다. 프뤼 자체가 독일 전 지역 왠만한 큰 슈퍼마켓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브랜드인지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선소주 부산 플래그쉽 스토어 이런데에서 마신 셈… 아… 아무튼 이건 정말 아니다.
3. Reissdorf
역시나 달다. 탄산감이 가장 부족하다. 딴 맥주캔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마시는 느낌이 든다. 희미한 탄산감. 생맥주가 아닌것 같다. 기포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곡물감이 가미된 차라는 느낌이 강하다. 칭다오 같이 녹차나 보리차처럼 일상적으로 곁들이기 좋을 것 같다. 밍밍해보이는데 또 다 마시고 난 잔에 앤젤링이 남아있다. 빈잔에 코를 대니 바이쩬의 향이 올라온다. 어제 갔던 gaffel am dom보단 내부 인테리어가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훈장같은 것들이 bräuhaus 벽 한켠에 잔뜩있다. 목재와 구리 특유의 적갈색이 푸근한 안정감을 준다. 점심시간인지라 여유롭게 이곳 근처 지역 주민들이 하나씩 둘씩 넷씩 모여 오손도손 식사를 즐긴다. 배경음악으로는 다소 안 어울리는 소울 음악이 흘러나온다 cool & the gang의 celebrate, Smoke on the water… 아마도 이곳의 매스큘린한 쾨베스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리라. 식사로는 아몬드가 곁들여진 스파겔 수프를 먹었다. 이상한 쨈통같이 깊은 jar에 내왔다. 어떻게 먹으라는건지. 그래도 스파겔에 아몬드 특유의 너트함이 무척이나 잘어울렸다. 직원들은 이제까지의 gaffel과 비교했을때 무척이나 친절하다. 친절함은 고객수에 반비례하는 것일까?
4. Päffgen
1883년에 설립된 하우스 브라우어라이. 가게 안에는 이 지역 어르신들밖에 없다. 우리나라 순대국밥집에 어르신들만 계시면 뭔가 신뢰감이 가는 것처럼, 그 올드함이 아주 믿음직스럽다. 가게 내부도 옛날 그 시절 지역 유지들의 연회가 열렸을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이다. 1883년부터 운영된 이곳 가게의 벽에는 이 가게를 운영해왔던 것 같은 가문의 사진들이 있다. 초상화부터 스케치까지. 쓸데없는 팝송도, 배경음악도 필요없다. 옛날식 전화기가 따르릉 따르릉 울리는 소리, 어르신들의 낮고 깊은 대화소리로 소리는 충분하다. 확실한 건 분위기에서부터 이곳이 진짜라는 것이다. 잔에는 문양같은 것도 없다. 꾸밈이 없다. 맛은 그 동안 마신 쾰시와 비슷했지만 어딘가 그 밍밍함안에 부드러움이 있었다. 진짜 쾰쉬맥주를 경험하고자한다면 차라리 이런 곳을 추천하고 싶다. Gaffel이나 Früh처럼 양아치스러운 곳보다 100000000배 더 진실되다.
5. Schreckenskammer
가장 알코올 도수가 훅 강한게 느껴진다. 탄산도 강하지 않다. 양조장들마다 쾨베스들의 착장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곳에선 하늘색의 셔츠와 네이비색 에이프론의 착장이다. päffgen과 비슷한 브라운 톤의 올드빈티지 인테리어인데 거기에 살짝 오렌지한 색감이 더해져있다. Schreckenskammer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건너 룸 같은 곳에서는 단체손님들이 파티중이다. 누군가 기념연설을 하고 싶은지 잔을 은수저로 팅팅 치면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옆 테이블에서는 스페인 부부가 구글번역으로 “옆테이블의 저 남자는 무엇을 먹고 있나요”라고 웨이터에게 물어보고 있다. 아무튼 이런 온화한 식당이다. 저녁으로 찾은 이곳에선 까망베르가 올라간 슈니첼에 딸기잼 감자튀김이 나왔는데 보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이틀연속 독일 음식은 확실히 무리였나보다. 아시아스러운걸 먹어줄 때가 되었나보다.
6. Gilden
Heumarkt에 위치한 노상에서 마셨다. 가게 외벽엔 슬리데린 같은 초록 조명이 불길하게 쾰른 특유의 시꺼멓게 그을린 알트바우벽을 비춘다. 쾰른이 흉측하게 느껴지는것 중에 하나가 알트바우의 수가 압도적으로 없다는 점과 그 얼마 없는 알트바우들마저 전쟁의 상흔탓인지 시꺼멓게 그을려 있다는 점때문인 것 같다. 야외 테라스 앞에선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성이 기타를 치며 포르투갈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맑은 날의 오후라면 더 없이 좋으련만, 아쉽게도 쾰른은 여전히 우중충하다. 이곳 Gilden의 맥주는 그나마 탄산이 가장 살아있다. 디자인도 가장 현대적이다. 100년된 가족경영 브라우어라이라는데 로고는 무슨 신생 홍대 클럽같이 생겼다. 어딘가 켈트스러운 아일랜드의 느낌도 난다.
7. Mühlen & Sünner
그간 다녔던 쾰쉬비어 양조장들과 비교했을 때 이곳은 그냥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브랜딩한 바 공간이었다. 어정쩡하게 전통적인 척 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런 쪽이 훨씬 쿨하고 낫다. 바키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쾰쉬 양조장을 다 돌면서 시음해보는 중이라고, 어디 쾰쉬가 제일 맛있냐고 추천해달라고 하자 당연히 자기네 브랜드게 가장 맛있지하며 농담반 진심반 나를 흘겨보았다. 어딘가 잘못된 질문에 올바른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냥저냥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바키퍼가 아니라 진정 자기가 일하는 곳에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이었다. 이곳 Mühlen의 쾰쉬는 확실히 이상한 달큰한 끝 맛이 가장 덜했다. 바키퍼가 추천해 준 다른 브랜드 Sünner도 마셔봤는데 너무 괜찮아서 놀랐다. 향이 뭔가 달랐다. 기존 쾰쉬에서 맡아보지 못했던 열대과일향 비슷한 향이 난다. 전용 양조장에서 마신 것도 아니고 생맥주 기계에서 뽑아 내린 것도 아니고 병맥주에서 따라 마신거였는데다가 심지어 디자인도 약간 우리나라 신생 수제맥주 브랜드들에서나 볼법한 알록달록한 그런 거였는데 그간 먹은 쾰쉬 가운데에서 가장 산뜻하고 역한 느낌이 덜했다.
8. Peters
päffgen, schreckenskammer와 더불어 가장 올드스쿨한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였다. 창고 같은 곳에서부터 파스(Fass)를 부지런히 옮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규모가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부터 단체 대학생으로보이는 손님들이 북적북적했다. 내 테이블 옆자리에는 부부동반으로 온 듯한 미국인들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 팁을 주는 문제부터 팁에 대한 생각을 듣는게 흥미로웠다. 그것도 “미국인들”이 이야기하는 팁에 대한 입장. 그들의 말에 따르면 더 나은 서비스와 대접을 기대하기에 팁이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런게 보장이 안 되있다면 특히 화장실 같은 경우에 절대 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구석자리 테이블에 앉아 쾰쉬도 제때제때 리필이 안 되고, 나가는 길에는 아리가또고자이마스라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전반적으로 규모가 있는 영업장이라면 오히려 더 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애석한 일이다.
9. Sion
파스(Fass)에서 바로 따라주는 맥주였다. 맥아향이 강하게 난다. 먹었던 것들 중에 가장 고소하다. 고소한 내음이 입안에 후욱 퍼진다. 옛날 그 시절 Köbes들의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기본적으로는 신식건물인데, 그 위에 옛날 중후한 느낌을 내려는 인테리어의 흔적이 묻어있다. 교회식의 스테인글라스 장식이라던가… sion 이곳도 오래전 설립되어 나름 역사가 있는 곳인데 그런 인테리어적인 부분들이 이전의 päffgen이라던가 schreckenskammer에 비하면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차라리 카운터에서는 신입 쾨베스가 베테랑으로부터 크란츠를 든 채로 파스에서 거품이 안 넘치게 따르는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차라리 이런 풍경들이 더 오히려 전통스럽다고 느껴진다.
Marseille, 2026
Jean-Michel Basquiat in his room at the Ritz-Carlton Hotel in New York City, 1984. Photos by Andy Warh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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