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너무 많이 접어서 다 읽고 나면 책이 두 배가 될지 모른다. 후벼 파듯 지독하게 잘 쓴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착각은 나와 그가 비슷한 인간일지 모른다는 것. 서로의 문장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오늘 읽었던 부분에서 F는 자살이나 자연스러운 죽음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피로, 자신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해결될 삶의 피로를 이야기했다. 얼마나 적확한 말인가! 가깝고 먼 모든 타인과의 관계, 내가 죽는다 해도 얼마간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나, 허공에 떠도는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 내던졌던 고함들, 절망적인 몸짓들……. 그 흔적들은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 결국 애초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어야 그 모든 게 정화될 수 있다니? 그걸 인정하는 일조차 피곤하지 않은가?
내가 택하는 도피처는 잠들어야 닿을 수 있는 저 너머다. 잠이 들면, 나는 잠시 내가 아니게 되고, 어쩌면 그 동안에는 임시적으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끝없이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도 또 잠들길 바라고, 이대로 잠들고 싶지 않은데 얼른 잠이 들 시간이 기다려진다. 내가 삶을 사는 수동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더 완벽한 수동성을 취하고 싶다.
우선 술을 마셔야겠다. 가장 뜨거운 관계와 내일에 대한 걱정을 마취시키고, 그리고 잠들어야겠다. 그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는 것 같다.